유난히 시간이 빨리 지나갔던 것 한 학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차례의 휴학과 미국유학 후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라 의미가 깊고 더불어 많은 다짐도 했었는데, 우연치 않게 알게 되었던 GSP를 통해 다행히 반년동안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맡았던 학생들은 Lucio와 Colby 두명 모두 미국에서 온 친구들입니다. 새로운 GSP가 무렵 Colby는 한국에 도착한지 한 달 여쯤이 지난 상태라 이미 많이 적응을 해있었고, 며칠 뒤 Lucio가 한국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도착 예정일 하루 전부터 미리 서울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낯선 땅에 처음으로 발을 내려놓는 기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 Lucio를 픽업한 뒤 대전에 도착할 때가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고, 한국인과 한국 그리고 미국과의 차이점을 즐겁게 이야기했던 시간은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그 후로 수강신청, 강원도 오리엔테이션 등의 기회를 통해 한국인 친구들은 물론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가까워 질 수 있었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다름'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노파심이었지만, 행여나 제가 맡았던 Lucio와 Colby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에 항상 옆에 있어주자고 생각해서 제 수업시간을 대부분을 두 친구들과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길을 걷다보면 저보다도 친구가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은 한국생활에 잘 물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노파심 덕분에 두 친구들과 저는 형제처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까지 물론 전혀 진통이 없진 않았습니다. 그 둘은 기숙사 같은 방을 사용하며 전교의 유일한 미국인이지만 둘의 관계는 그리 매끄럽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생활패턴 속에 삶을 살아가다 보면 둘의 관계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여 둘 사이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파티가 있을 때마다 같이 데리고 가고, 밥을 먹을 때 같이 있게 해주며 둘의 대화가 많아지길 유도하였고, 현재는 탈북자들(새터민)에게 영어를 교육하러 매주 판암동까지 같이 이동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둘만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멋진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달에 개최되었던 운동회의 시작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이 많이 든 친구들이 불과 몇 달 후면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 괴롭혔을 때, 뭔가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써포터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습니다. 준비 과정 속에서 '자유로운 써포터의 활동' 이라는 이름 아래 몇 번이나 작은 마찰음이 들렸지만 모두에게는 그룹생활 속에서 적응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우린 그 것을 지혜롭게 극복했습니다. 사실 운동회 자체는 제가 했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 행복했던 시간을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외국인 친구들의 인사에 할 말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처음에 제가 미국인 둘을 담당한다고 들었을 때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했지만 부담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인들의 강한 성품은 다루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 두 친구들의 마음을 열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새 한국생활에 적응이 되어 된장찌개를 퍼먹고, 웃어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들에게 들었던 "너는 마치 미국인 같다. 정말 네가 우리의 서포터라 다행이었다." 라는 말은 저에게 더없이 큰 칭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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