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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에서의 생활, 그리고 내 눈에 비친 미국 - 강민구
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10.10.29 10:14 | 조회수 : 5817
안녕하세요? 글로벌 인재양성 1기로 뽑혀서, 유타대학교에 다녀 온 경영학과 05학번 강민구입니다. 유타대학교에 10명 넘게 파견되었었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좋은 글을 써 주셨네요. 저는 체험수기라는 것에 걸맞게 Utah 대학교에 대해 소개한다기 보다는, 제 체험과 느낀점을 위주로 글을 썼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파견되었던 분들과, 많은 도움을 주셨던 박해석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유타에서의 생활과 내 눈에 비친 미국 -

 

  요즘,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모두 한번씩은 교환학생, 어학연수, 해외배낭 여행 등으로 외국에 나가는 것을 꿈꾼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다만, 나는 목적이 조금은 달랐다. 어렸을 적, 나는 스웨덴에 살다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눈에 비친 외국은 환상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러한 환상을 깨트리고 싶었다. 대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내 눈으로,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외국’을 체험하고 싶었다. 사실, 계속 해외에 나가는 것을 꿈꾸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좋은 프로그램에 선발 되어 미국 유타대학교로 가게 되었다.

  여러 가지 실수를 각오하고, 많은 것을 배울 요량으로 갔지만, 처음부터 나는 큰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인천공항서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솔트레이크시티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표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일행들은 먼저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가고 있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스폰서였던 SAF에 전화할까도 했지만, 결국 혼자 부딪히기로 마음 먹었다. 침착하게 평정심을 되찾고, 항공사 직원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고, 내 예약번호와 여권을 보여주었다. 몇 분의 설명 끝에 나는 비행기표를 재발급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행들이 먼저 갔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보안 검색대 직원’에게 이미 아까 통과했다고 했지만, 절대로 통과가 안 되고 다시 줄 서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줄을 끼어들었는데, 그 것 때문에 백인 남성한테 한 소리 들었다. 결국, 뒤로 물러서서 줄을 다시 서고, 보안검색대를 새로 통과하고 나서야, 솔트레이크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나는 도착하기도 전에 미국인의 ‘원칙주의’ 와 함께, 내 실수이기는 하지만 미국생활의 쉽지 않음을 경험한 것이다.

   솔트레이크에서의 생활은 내가 꿈꾸던 미국 생활과는 달랐다. 우선은, 유타대 어학원의 시설이 생각보다 별로 였다.(시설도 오래되었지만, 그 보다 한국인의 비율이 많았고, 반인원수가 20명이 넘었다) 두번째로는, 캘리포니아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유분방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솔트레이크는 유타주의 제일 큰 도시로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타 특유의 보수적(몰몬교의 영향)인 성향이 강하다. 물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친절하다거나, 한국에 선교사로 갔다 온 미국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하고, 평온했다. 또한, 캠퍼스 생활도 술이 금지되어 있고, 파티도 생각보다 적었다. 안전하고, 평온한 생활과 학업에 정진하고 싶은 분들께는 강하게 추천을 하고 싶다.

  파견된 3월부터 7월까지 2개의 Session을 마치고, 8월말부터 12월 중순까지 가을학기로 15학점을 들었다. 사실, 영어로 수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할만했다. 물론 Native speaker가 아니기 때문에, 공부량이 많았다.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가끔은 시험범위가 많아서 밤을 샌 적도 있었다.

  의외였던 점은 교수와 학생들의 speaking이었다. 교수님들의 말은 알아듣기 나름 쉬웠다. 어떤 교수님은, 일부러 국제학생들을 배려해서 천천히 설명해주는 교수님도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친구들이 말하는 것은 여러 가지 Slang도 있었고, 말투도 굉장히 빨라서, 이해하기 힘든 적이 많았다.

  영어를 할 때 제일 힘든 점이 말하기였는데, R과 L 발음이 제일 힘들었다. 실제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이 발음을 제일 못한다고 한다. 미국생활 도중에 코스트코를 가게 된 일이 있었다.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Excuse me, where is the Costco?”라고 길을 물어보았는데, 계속 “What~?”이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한 3번을 설명하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Ah~ 커스커”.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에 한번은 점원이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아임 프롬 솔트레이크시티”라고 하니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름 혀를 굴려서 “암 프롬 솔렉시리”라고 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결국 4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자, 종이에 써 주는 굴욕(?)적인 상황도 있었다.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어서, 방학 때는 무조건 다른 주로 여행을 갔다. 미국은 주마다 문화가 다르다. 미국은 42개의 나라가 합쳐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차이가 나고 넓다는 것이다.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았지만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문화를 보고, 듣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미국은 분명히 거대하고, 좋은 나라이다. 다인종사회이기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도 은근히 있었고, 경제 대국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낭비가 심했다(분리수거가 없었다. 그냥 필요 없는 것은 봉지에 넣어서 바로 버린다) 세금도 비싸고, 술과(우리나라처럼 길거리에서 소주나발 불면 큰일난다) 갖가지 규제가 많았다.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엘리트들(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다)과 미국의 거대한 자본력(미국 NBA 유타재즈의 경기를 보았는데, 정말 이벤트도 많고 화려했다)과 세계 1위 대국의 자존심은 무시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은 소송과 원칙주의의 나라이다. 그렇지만, 내 자신만 정신을 바짝 차리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은 것은 미국이다. 쇼핑을 하더라도, 정보가 많으면(Clearance라고 굉장히 싸게 파는 품목도 있고, 크리스마스 전후나, Thanksgiving 전에 대규모의 세일을 한다. 세일기간을 이용하고, 쿠폰을 출력하고, 좀 더 세일을 많이 하는 품목을 고르면, 효과적인 deal을 할 수가 있다. 또한, 물건에 흠집이 있으면, Manager와 잘 이야기해서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효과적으로 할 수가 있다. 또한, 학교 기숙사 Payment와 관련해서도, 나는 분명히 Meal plan 을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돈이 청구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 2,3번 정도 사무실에 가서 따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만약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면,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어디서든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에서도 내 자신의 금융에 관련된 문제라면 잘 관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유타의 정과 평온함, 라스베가스의 훌륭한 야경, 뉴욕의 월스트리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등등. 기억나고 또 가고 싶은 곳들이 많다. 월 스트리트를 보면서, ‘나도 저기서 한번 일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과 Vegas Bellagio hotel을 보면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꼭 다시 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글로벌 인재양성’을 통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다시 나가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다. ‘환상’을 깨트리고, 냉정한 시각으로 ‘외국’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문화체험과 글로벌시대 경영학도로써의 경쟁력을 키우고, 영어능력 증진과 많은 국제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감옥에 있던 주인공이 꿈을 꾸게 되는데 사막에서 사람들이 주인공을 향해 ‘인생을 허비한 죄’가 있다고 하자, 발뺌하던 주인공이 ‘Guilty’라고 하면서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뉴요커들에게 놀랐던 점은 부지런함이다. 5시쯤 일어나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고, 출근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미국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힘들었던 점, 잘 안되었던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은 할 수 있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 머피의 명대사 ‘그래도 나는 시도는 했잖아, 시도는 했다구~!!’ 영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 해외 나가는 게 두려운 분들, 모두 이 말을 기억하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내가 파견되었을 때, 나는 영어실력도 부족했고, 고환율이라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오래도록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더욱더 많은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아니면 국제 교류프로그램을 통해서 새롭게 도약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왔으면 좋겠다. 단순히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한걸음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서 말이다. 젊을 때 도전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 원글작성일 2010-02-07 17:4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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